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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로·버스로

보령 오천항

by 느린바퀴 2008. 3. 12.

기차타고 떠나자는 제안으로 계획에 없던 갑작스런 나들이. 부담없는 가까운 곳으로 정해 보령 오천항.

용산발 서대전행 무궁화호를 타고 광천역에서 하차.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오천행 버스를 타려고 보니 5분 전에 이미 버스는 떠나 버렸고, 다음 버스는 2시간 뒤인 3시20분에 있단다. 헉~! 해서 보령으로 가서 방법을 찾아보기로 하고 보령행표를 샀으나 어느 버스기사님의 조언에 따르면 곧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주포로 가서 오천행 버스를 갈아타는 것이 빠르단다. 보령행 표를 주포행(1000원)으로 바꾸고 출발. 10여분 달린 후 주포에서 하차하고, 길을 건너 눈 앞의 교차로에서 사진의 버스 나오는 쪽으로 조금 더 간 정거장에서 오천행 버스(1100원)를 탔다. 그리곤 10여분 가면 오천항이 있다. 도미부인사당과 갈매못성지 등도 보고 더 둘러보고 싶지만 당일치기 여행은 아무래도 시간의 압박이 크다.

 

 

오천항에 도달해 먼저 옆에 있는 오천성을 둘러본다. 이건 오천성에서 내려다 본 오천항 모습. 안개로 인해 날씨가 흐릿해서 사진도 산뜻하지 못함.

 

오천성 입구

 

 

성곽이 많이 남아있지 않고, 성곽 아래 주변엔 쓰레기더미가 많아서 속상하다.

 

충청수영 진휼청 건물이 덩그러니 홀로 있다.

 

성곽 위를 걸어보다..

 

오천항이 한 눈에...

 

오천성을 돌아 도로 건너편에 있는 충청수영 객사건물.

 

지붕 위의 잡초...세월의 흔적인가

 

보존상태가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는다. 부서진 벽도 있고 

 

문짝도 떨어지려고 하고

 

 

출입구 기둥엔 구멍이 뚫리고

 

옆면의 흙벽도 깨어진 부분이 있고...숭례문이 타버렸다고 울고불고 난리들이지만 다니다 보면 아직 남아 있는 다른 유물유적들은 여전히 무관심 속에 있는 듯...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는 나도 별반 다를게 없지만 무척이나 안타깝다.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영어몰입교육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견고히 하는 것부터가 아닐런지...자기 역사를, 언어를, 뿌리를 이처럼 무시하는 나라(?)가 또 있을라나?

 

객사건물을 둘러보고 오천성곽을 돌아 오며 바라본 보령방조제. 저기서 바라보는 일몰이 멋지다던데...

 

 

 

뱃속 편하기 위해서 부담 없는 칼국수를 늦은 점심으로...칼국수도 김치도 산뜻하고 맛있다! 특히 김치에 사용된 고추가루의 맛이 아주 좋았다. 오천항 한끝자락에 있는 오양식당. 오천항에 있는데 왜 오천식당이 아니고 오양식당이냐고 했더니, 주인아주머니 왈, '난 오양도 아니고 이양인데'라며 작명하기가 어려웠다고...^^...다른 손님들도 같은 질문을 많이 한단다.

 

태안 원유유출의 영향이 없는 듯...조개가 무지 맛있다! 바다 맛 그대로.... 칼국수 한그릇에 들어 있던 조개의 양이다. 많다^^

 

오천항의 특산물은 키조개인 모양이다. 작업하시는 아주머니들이 까놓은 걸 보니 알이 무지 크다.

  

 

배타기 위해 표를 사는 곳 앞에 매여있던 강아지. 순한 녀석인 듯...빤히 쳐다보길래 건빵 몇 알을 줬더니 어찌나 잘 먹던지...좀 멀리 떨어진 건빵은 앞발을 뻗어서 잡아당기는 모습은 또 어찌나 귀엽던지...밀어주느라 그 모습을 찍지 못했지만.

 

 

 

 2008년 2월부터 무궁화호에서도 열차카페가 운영된다는 광고글이 내걸렸길래 들어가 본 열차카페. 인터넷도 할 수 있고, 그 옆 통로 건너엔 미니콘서트룸(이그..다 영어표기다)이란 팻말이 달린 작은 방 세 개가 있다. 푹신해 보이는 의자와 함께...전체적으로 나름 분위기 괜찮은 공간이다!!!

 

 

 

 

 

뜨거운 코코아에 뎃다..:oP 여튼 계획에 없던 유쾌한 여행!!

 

[오천성 : 충남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931

1973년 12월 24일 충청남도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었다. 성의 길이는 1,300m이며 높이는 3~3.5m, 총면적은 87,678㎡이다. 이곳은 백제 때에는 중국·일본과 교역하던 항구로서 회이포()로 알려져 있다. 고려 때부터는 자주 침범하는 왜구를 물리치기 위하여 군선()을 두었다.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1396년(태조 5) 서해안 방어의 요충지로 수군첨절제사(使)를 두었고, 1421년(세종 13)에는 그 명칭을 도안무처치사(使)로 고쳤으며 1466년(세조 12)에는 수군절도사로 고쳐 서해를 방어해왔다.

당초 이 지역에 토성이 있었으나 1509년(조선 중종 4) 수군절도사 이장생()이 돌로 다시 쌓았다. 거북과 같은 지형을 이용한 이 성은 완공하는 데 총 16년이 걸렸다고 한다. 당시에는 사방에 문을 두었고 영보정()·망해루()를 설치하여 바다와 주변의 섬들까지 살피는 통신망을 구축하였다.

곡성()에는 각루()와 담을 돌려 관망소()로 사용하였고, 성내에는 도로를 만들어 관리와 백성이 함께 살았다. 당시 성에는 문 4개소, 연못 1개소, 건물 40동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서문 1개소와 장교청()·진휼청()·공해관() 등 관아 건물 3동이 남아 있다.

지금은 성곽 일부가 훼손되어 남아 있는 성은 약 1Km 정도이고, 보령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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