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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퀴로

예산 추사고택

by 느린바퀴 2008. 3. 2.

조선시대의 탁월한 서예가이자 실학자인 추사 김정희 선생의 고택을 찾아가다...

평택역까지는 전철로 가고, 평택역에서 45번국도-34번국도-623번지방도-645번지방도-21번국도를 거쳐 도착. 대략 60km정도의 거리. 전같으면 가벼운 단거리인데 오늘은 힘겨운 거리. 그간 자전거를 거의 타지 않은 까닭에 돌아오는 길은 어둠에 밀리는 부담없이 편하게 기차-전철로...하지만 피해가 큰 여행이었다. 표지판 기둥에 자전거 세워놓고 사진 찍다가 지나가는 차가 일으키는 바람에 밀려 자전거가 우측으로 넘어져서 뒷기어변속레버가 망가졌다. 행어도 왕창 휘었고..아이고~ 하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그런대로 계속 달릴 수 있었다는 것! 만일 계속 달릴 수 없을 정도로 드레일러나 행어가 왕창 망가졌더라면 낯선 곳 한적한 도로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어쩔 뻔 했냔 말이지. 그러니 감사해야지 뭐... -,.-';

오늘은 반대차선에서 자전거 탄 사람 딱 한 사람 지나쳤고, 오토바이부대는 역시나 여러 번 지나쳤다. 간혹 뿅~뿅~ 신호음을 울려주는 사람들도 있고...오늘은 유난히 오프로드 팀이 많이 보였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것이 지난 한 달 동안 망원렌즈만 사용했더니 표준줌이 무지허니 낯설더라는...똑딱이 사용할 때 좁은 화각이 답답해서 렌즈교환식을 장만했건만 초기의 조금 더 넓어서 좋아 하던 마음이 도대체 어디로 갔냔말이다. 너무 당황스럽더라는...쩝! 간만의 잔차타기라 힘들기도 하고 도중에 자전거 넘어지는 바람이 맘 상하기도 하고 예정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달리느라 경로기록사진은 중도 포기.

 

평택역에서 한 시간여를 달려서 도달한 아산 공세교차로 쯤... 색이 다 이상하다. 날씨가 좀 뿌옇기도 했지만....다음부터는 다시 똑딱이나 들고 다녀야지... -,.-';  (큰 사진을 작게 보여주니 전선이 깨져서 보임)

 

 

여기서 좌회전해야 하나 잠시 갈등했으나 좀더 직진해야 함.

 

인주공단 방향 좌측길로 623번 지방도로 진입. 645번지방도를 만날 때까지 계속 623번지방도를 탐

 

여기서 좌회전

 

여기선 우회전

 

623번지방도를 타고 계속 달린다. 국도보다는 좀 조용한 편이지만 역시나 차가 많다.

 

선인대교. 꽤 길다.

 

 

나름 달리기 괜찮은 길. 새싹 돋아나고 꽃필 때 쯤 다시 달려보아도 좋을 듯...

 

이제 645번지방도로 갈야 타야함. 바로 여기서 변속레버 뽀사졌다. 으이그...어쩔것이여~

 

맘상해서 걍 달리기만 하다가 길이 헷갈려서 잠시 멈춘 기념으로 표지판 찍음. 사전조사 경로에 21번국도 고가도로 진입이 있어서 좀 걱정했는데 전혀 걱정할 필요 없는 고가도로를 였음.

 

 

드디어 도착. 시간은 4시 22분. 널널하게 달려서 약 3시간 30분 쯤 걸렸다. 입장료는 500원. 무지무지 친절한 매표소 아가씨 덕에 자전거 맡기고 후다닥~ 20여분 돌아보고 천연기념물인 백송과 다른 곳은 보도 못하고 기차역으로 출발. 기차역까지 얼마나 걸릴지 몰라서 서둘렀었는데...괜히 서둘러서 역에서 4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는거... -,.-';

 

역시 우리나라 지형엔 한옥이야. 정말 조화로와! 헌데 가는 곳마다 삐죽삐죽 아파트 건물이 들어서니..쩝

 

 

 

 

 

 

 

 

 

 

 

 

  

 

 

 

 

 

 

불쌍한 마린이. 카멜레온색 이쁜 녀석이 주인 잘못 만나서 제대로 자태를 뽐내지도 못해 생활잔차로 오해받고, 맨날 꾀죄죄하고, 넘어지고 자빠지고, 이리 긁히고 저리 까지고...미안하다.

 

 

 [조선시대의 탁월한 서예가이자 실학자인 추사 김정희 선생은 1786년 6월 3일 충남 에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이조판서 김노경의 아들로 태어나 백부 김노영에게 입양되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일찍이 북학파의 일인자인 박제가의 눈에 띄어 수제자가 되었다.

추사선생은 1809년 24세에 생원시에 합격했고, 그해 부친을 따라 청나라 연경에서 수행하고 돌아올 때 가져온 씨를 고조부묘 앞에 심은 '백송'은 천연기념물 제106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1819년 34세에 문과에 급제한 후 충청우도 암행어사, 예조참의, 성균관 대사성, 병조참판을 지내다가 1840년 55세에 댕장에 휩쓸려 제주도와 함경도 북청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제주도에 유배생활을 하던 중 1844년 59세에 당시 제자인 우선 이상적에게 그려준 세한도(국보제180호)는 세계적인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말년엔 생부 노경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과천에서 71세를 일기로 1856년 10월 10일(철종7년)에 작고했다. 선생은 단순한 예술가에 그치지 않고, 시대사조의 구문화체계를 탈피하여 신지식의 기수로서,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받아들여 신문화 전개를 가능하게 한 실학자인 동시에 선각자이기도 하다.

선생은 북학파의 거벽으로서, 청조의 고증학풍을 도입하여 악문으로는 경학(經學), 금석학(金石學), 문자학, 사학, 지리학, 천문학에 이르기까지 박통(博通)하였고, 북한산 기슭의 비석이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임을 고증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완당집(阮堂集), 에당금석과안록(禮堂金石過眼綠), 실사구시설(實事求是說), 완당척독(阮堂尺牘), 담연재시고 등이 있다. 시(詩), 서(書), 화(畵), 전각(篆刻) 등에도 뛰어났으며, 서도(書道)는 추사체라는 곡자일문(獨者一門)을 열어 서예사상 지고의 경지를 이룩했다. 작품으로는 묵란도(墨蘭圖), 墨竹圖)오 국보로 지정된 세한도(歲寒圖) 등이 있다.

추사고택은 추사의 증조부이며 영조대황의 부마인 월성위 김한신이 1700년대 중반에 건립한 53칸 규모의 양반 대갓집으로써 추사 선생이 나서 성장한 곳이며, 주변에는 추사 선생 묘, 화순옹주 묘와 정려문, 백송, 추사 선생이 수도하던 화암사 등 추사선생과 관련된 문화유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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