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푸른 것이 자랑이던 우리 하늘이 요즘은 늘 뿌옇다. 미세먼지경보도 잦고...
가끔은 자전거타느라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다. 이러고 돌아다녀도 되나 싶은 생각에.
실제로 일정을 마치고 저녁이 되면 목상태가 좋지 않을 때도 있다.
이젠 자전거를 타면서 단순히 흐림 또는 맑음에 관한 일기예보만 신경쓰는게 아니라 바람의 방향까지도 고려하게 된다.
서풍을 타고 몰려오는 중국발 유해물질이 요즘의 뿌연 하늘의 주범이지 싶으니 말이다.
서풍이던 바람의 방향이 동풍으로 바뀐 날 새벽에 밖을 보다 순간 깜짝 놀란다.
아니 이렇게 맑고 선명한 하늘이~?!!! 그렇다면 길을 나서야지. 주섬주섬 챙기고 4월부터 가려 했던 논산의 명재고택을 향해 출발한다.
1호선 전철을 타고 아산 배방역으로 향한다. 논산까지는 23번국도를 타면 쭈욱 갈 수 있지만 시끄운 국도를 피해 한적한 지방도 위주로 타고 가기로한다
. 배방역-623번지방도-618번지방도-23번국도-604번지방도-643번지방도-645번지방도-명재고택-노성천변-논산역의 순서로 달려서 총거리는 91km.
국도답게 통행차량이 많고 시끄러운 23번국도를 제외한 전체경로는 한적하고 평화로우며 푸근한 느낌을 준다. 간혹 갓길이 없는 구간이 있기도 하지만 조금 조심해서 달리면 별문제는 없다. 공주를 지나면서 40번국도를 계속 타도 되지만 역시 국도를 피하기 위해 지방도를 선택했는데 역시 탁월한 선택이다.
논산에 있는"명재고택"은 조선 숙종 때 학자인 윤증의 고택이다. 윤증은 벼슬에 나가지 않았으나 높은 학식과 덕망으로 유명해 임금이 얼굴도 보지 않고 우의정 벼슬까지 내린 인물이다. 일반적으로 고택은 시조가 집을 설계해 지었던 것과 달리 명재고택은 그의 제자들과 아들이 지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윤증은 이집에서 살지는 않았다. 동학혁명과 한국전쟁에도 마을사람들의 보호를 받으며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양반집을 노린 어느 농민군이 명재고택을 불태우려 하지 마을주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이 집은 건드리지 말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집 앞에 있는 연못
작은 고기들이 아주 많다.
구 소련의 대통령, 고로바쵸프가 기념식수한 나무란다.
웬지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저런 나무들을 보면 뭔가 숙연한(?) 느낌이 든달까? 여튼 저런 나무즐에는 눈길이 오래 머문다.
직은도서관이란 팻말이 붙어있던데...이곳저곳 안을 들여다 봤으면 좋을텐데
여기부터는 지나쳐 굴러간 길이다.
총거리 650m의 곡두터널. 일반적으로 터널을 지날 때 공포를 느끼게 하는 자동차 굉음이 이곳 곡두터널을 지날 땐 상당히 부드럽다. 소리공학에 대해선 문외한이지만 아마도 터널이 곡선의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름 꼼꼼한 지도검색으로 메모하지만 한번 엉키면 이정표가 없는 곳에선 도통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있다.
23번국도에서 벗어나 627번지방도를 타려는데 예정했던 곳을 지나치고 헤매다가 지나가는 차를 붙잡아 세우고 공산성 방향을 묻는다.
운전자 왈, '아마 이길로 가면 될걸요'. 되묻는다, '아마?'' 순간 뒷자석에서 웃음이 쏟아진다. 크허허~ 다 같이 한바탕 웃고 윗길로는 자전거가 가는 걸 본 적이 없다며 확실하단다. 고맙다고 인사드리고 다시 페달질을 한다. ㅎㅎㅎ
모내기가 한창이다.
공주에는 자전거타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그간 자전거를 타고 먼길을 나서면 오토바이 타는 이들은 많이 봤지만 자전거 타는 이는 어쩌다 한, 두 명 밖에 못봤는데 이날 공주에선 열명은 본 것 같다.
혼자 달리는 나를 향해 화이팅을 외쳐주기도 한다. 또 혼자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마주오던 이는 '빠앙~'을 울려준다.
이럴 땐 어쩌나. 자전거에 딸랑이도 없는데...화이팅에도 '빠앙~'에도 그저 고개만 꾸뻑~
몇 년만에 다시 만나는 공산성. 반갑다. 하지만 이번엔 그냥 지나쳐 간다. 다만 한 가지 전과 달라진 것은 몇 년 전에 왔을 때 자전거를 타고 안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날 보니 '이륜차.자전거 출입금지'라는 표시가 있다.
공산성을 지나 논산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우금티터널이 나온다.
우금티(우금치)는 공주 주미산의 고개이름으로 동학농민운동의 격전지였단다.
동학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 연합군과 1894년 10월 23일부터 인근지역에서 싸움을 이어가다 11월8일 마침내 우금티에서 결전을 벌였고, 고개로의 진격과 후퇴를 무려 40~50차례를 거듭하는 혈전 끝에 거의 전멸했다.
이후 재개를 노린 전봉준이 체포되어 이듬해 3월 처형됨으로써 1년 간의 동학농민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저 위가 우금티(우금치)고개였으나 지금은 터널이 뚫려있다.
국토가 좁고 긴 역사를 가진 나라라서인가 곳곳에서 크고 작은 지난 시간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다.
국사가 선택과목인 교육현실. 부디 역사교육이 철저하게 이뤄졌으면 좋겠다.
우금티격전지기념비 앞에 잠시 서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웬지 그날 흘린 피들의 호소가 들려 올 듯하다. 오늘을 사는 자는 또 열심히 페달을 저어가야지.
비교적 짧은 우금티터널을 통과한다.
시야가 뻥~뚫린 것이 시원하다. 컴퓨터 모니터에 찌는 눈엔 보약이 따로 없다.
명재고택을 둘러보고 나와 논산역을 향해 달린다. 23번국도를 타고 가면 간단하지만 한적한 길을 찾아 노성천변을 달린다.
마침내 도착한 논산역. 왕래하는 승객이 많다.
처음으로 타보는 기차, 누리로. 자전거석은 없고 2호차에 휄체어석이 있어 그곳에 자전거를 둔다.
다른 기차와 좀 다르게 한쪽에만 휠체어석이 있어 넓다.
내좌석은 4호차에 있지만 자리주인이 오면 일어나야지 하며 어쩔 수 없이 2호차 1번석에 앉는다.
의자팔걸이에 점자가 찍혀 있는 것이 이 역시 배려석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기차를 내릴 때까지 자리주인은 나타나지 않는다. 덕분에 편하게 앉아서...ㅎㅎ
이날도 역시나 길이 헷갈려 또 다시 지나가는 차를 두 번이나 붙잡아 세우고 길을 묻는다.ㅎㅎ
자신이 작성한 메모를 이해하지 못하다니...-,.-
모든 운전자들이 친절하다.
요즘 같이 네비게이션기능이 있는 스마튼폰이 대세인 시대를 살면서
다른 사람의 갈길을 막아서는 것이 민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느리고 좀 불편해도 아날로그적으로 살고 싶고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이쯤되면 스마튼폰의 사용을 고려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냥 뚜버기용 네비게이션이라도 장만해야 하는가?!
사람이 참으로 간사한 존재인 것이...작년 강원도 운탄길을 가다 헤맨 길에서 동행이 소유한 스마트폰 GPS기능의 편리함을 한 번 체험하고 나니 이런 갈등도 하게 된다...쩝~!
'두바퀴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풍호 자드락길 (0) | 2013.11.05 |
---|---|
여긴 어디? 난 누구? (0) | 2013.10.04 |
노동절의 자전거산책 (0) | 2013.05.02 |
진달래 핀 수리산 (0) | 2013.04.19 |
서산 유기방가옥 (0) | 2013.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