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2주년_중명전과 아관탑
102년 전 오늘, 즉, 1910년 8월 29일은 대한제국의 주권이 일본의 강압에 의해 일본으로 넘어간 날. 지난 광복절에 가려다가 소낙비 때문에 미뤘던 비운의 역사 현장인 중명전과 아관탑을 찾아가보기로 한다. 우선은 수박 겉핥기 식으로 외부만 보고 내부는 나중에 자전거 없이 가서 차분히 둘러보기로 한다. 박무가 아쉬운 날씨. 양재천-남산-덕수궁 중명전/구러시아공관터(아관탑)-마포대교-안양천으로 돌아서 약 85km.
중명전은 덕수궁 별채로서 황실도서관으로 지어진 2층 벽돌건물이며, 정관현과 독립문을 설계한 러시아 건축가 A.I. Sabitin이 설계했다. 1904년 덕수궁이 불타자 고종의 집무실인 편전이자 외국사절 알현실로 사용되었다. 중명전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던 비운의 현장이며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이 특사를 파견한 곳이기도 하다. 평일 오전엔 자유관람, 주말과 평일오후엔 예약관람이 가능하다
중명전. 명(明)이 다르다. 日 대신에 目이 쓰였다. 왜 일까? 정말 누군가의 말처럼 일본을 의미하는 日이 싫어서 目을 사용해 옥편에도 없는 글자를 사용한 걸까? 얼마나 치욕스러우며 참담한 심정이었을지 헤아려지는 부분이다.
중명전 마당에 있는 우물. 덮개가 닫혀있다.
뒷모습도 보고...
중명전을 나와 구러시아공관터에 있는 아관탑을 찾아본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乙未事變) 이후 일본군의 무자비한 공격에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가 1896년 2월 11일부터 약 1년간 조선의 왕궁을 떠나 러시아 공관(공사관)에 옮겨 거처한 사건인 아과파천의 현장이다. 아관탑 부분에서 덕수궁 쪽으로 1km 남짓 거리에 비밀통로가 있단다. 여튼 국가든 개인이든 힘이 있어야 당당할 수 있음을 또 한 번 생각하는 날이다.
오랜만에 남산을 오르면서 내려다 본 시가지
박무가 심하다...
비행기가 더 가까이 있을 때 찍으려고 했는데 카메라를 꺼내는 동안 저 멀리 내빼버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