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백마고지/노동당사
매년 6월25일 쯤에 다녀오고 싶었던 철원 백마고지 격전지와 노동당사. 일 때문에, 혹은 비나 더위 같은 날씨 때문에 미루기를 몇 년. 드디어 올해 다녀왔다. 그것도 아주 맑은 날씨에, 군인의 리드에 맞춰 묵념도 하고, 단계별 안내와 설명을 들어가면서. 숙제를 마친 개운함이랄까...
한국전쟁 기간 동안 전사한 젊음들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게 느껴져 국립묘지의 무명용사의 묘들 찾기도 했었지만 늘 마음 한 구석을 누르는 부채의식이 무겁다. 그래서 더욱 다녀오고 싶었던 백마고지 격전지. 1952년 10월 6일부터 10월 15일까지의 열흘 동안 고지의 주인이 24차례나 바뀔 정도로 치열한 혈전이 벌어졌던 곳.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사했고, 심한 포격으로 산등성이가 허옇게 벗겨져서 하늘에서 내려보면 마치 백마(白馬)가 쓰러져 누운 듯한 형상을 하였으므로 '백마고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전투를 기념하여 백마고지 정상에 기념관과 전적비, 호국영령 충혼비가 건립되어 있으며, 해마다 6월6일 현충일과 10월 16일을 전승(戰勝) 기념일로 삼아 민·관·군 합동위령제를 거행하고 있단다. 잊지 않고 기념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죽은자들에게 위령제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문득 학생때 열심히 외웠던 영어구만이 생각난다. 살아있는 한 소망은 있다. 그래도 위령제 때 다시 한 번 가볼까...도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던건지...개인의 삶 속에서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또 무엇인지...몇 년 전 TV를 통해서 본 어느 이디오피아 노병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평생을 집안에서 누워서 살아야 했단다. 떠나는 한국 취재진을 향해 그가 했던 마지막 말. '나를 기억해주세요.' 그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그를 기억하는 것이 그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으며, 또 누가 그의 고통스런 삶에 보상해 줄 수 있겠는가?!
더위를 피해 새벽에 출발할까 하다 그냥 널널하게 출발. 소요산역에 도착하니 12시가 넘었다. 왕복 90km
땡볕을 이고 열심히 달려 연천을 지난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보는 푸른 하늘이다. 공기가 깨끗해서 인지 더 맑아 보인다. 덩달아 기분도 좋다
더위를 피해 잠시 버스정거장 그늘에서 쉬며 에너지를 보충한다.
갓길이 없는 구간도 있고 있어도 모래와 이물질이 많다. 탕 타당탕...사격훈련장에서 들려오는 소리. 나도 사격 좀 하는데...
드디어 강원도에 진입한다. 역고드음 뭐지?
길가 가시철조망에 붉은 글씨가 매달려 있다. '지뢰'
1946년 초 철원이 북한 땅이었을 때 철원군 조선노동당에서 시공하여 그해 말에 완공한 러시아식 지상 3층의 무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현재 1층은 각방 구조가 남아 있으나, 2층은 3층이 내려앉는 바람에 허물어져 골조만 남아 있다. 6·25전쟁의 참화로 검게 그을린 3층 건물의 앞뒤엔 포탄과 총탄 자국이 촘촘하다. 이 건물을 지을 때 성금으로 1개 리(里)당 쌀 200가마씩 거두었고, 지역 주민들로부터 강제 모금과 노동력 동원을 하였다고 한다. 또한 내부 작업은 비밀유지를 위해 공산당원 이외에는 동원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관광버스가 도착하고 사람들이 내린다. 둘러보러 오는 사람들이 꽤 있는가보다. 여튼 우리나라도 역사교육을 철저하게 했으면 좋겠다.
이제 백마고지 격전지를 향한다.
기념관 안의 전시물 중 격전 당시의 탄피를 모아 만든 조각상이란다. 음...
위령탑에는 모윤숙 시인의 '백마의 얼'이 새겨져 있다. 이 사진은 위령탑의 뒷모습
모으고 기도하는 손을 형상화했단다.
전망대. 이곳에서 바라보면 다~ 보인다. 사진은 올릴 수는 없고...이것저곳 설명을 참 잘해주더라는...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만난 제비집, 제비 아가들. 참 열심히도 입을 벌리고 있다.